2부 과거와 현재의 만남 


  할머니들의 과거는 여전히 현재와 화해하지 못 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의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역사관 1

: 일본군'성노예'제도


일본군문서와 관련 자료의 전시를 통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진상을 밝힌다. 일본군에 의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국가 범죄로서의 일본군성노예제도의 실체와 피해자들이 위안소에서 겪은 고통과 전후 상황 등을 살펴본다.

역사관2

: 일본의 조직적 국가 범죄


1930년대 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은 제도적으로 ‘군위안소’를 설립하여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하여 성노예로 만들었다. 일본군은 여성들을 ‘위안부’라 불렀으나 그 실상은 ‘위안’과는 거리가 먼 강간범죄였다.

역사관3

: 일본군 '위안소'의 실태


‘위안소’ 건물은 일본군이 지정한 지역의 가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방이 여러 개 필요했기 때문에 학교나 사원 등의 건물을 이용하기도 했다. 천막과 막사도 사용되었으며 군대가 직접 신축하기도 했다.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는 동굴이나 방공호 등에서 여성들을 강간했다. ‘위안소’내부는 보통 칸막이로 나뉘어진 작은 방 안에 간단한 침구를 두거나 요를 깔았으며 씻을 수 있는 대야 등을 놓였다. 전선에 가까운 ‘위안소’일수록 보다 간소하고 열악한 모습을 지녔다. ‘위안소’여성들은 한 ‘위안소’에서 계속 머무르기도 하는 한편 특정 부대를 따라 전선 각지를 이동하거나 ‘위안소’가 없는 전선 부근 부대를 위해 순회하기도 했다.

역사관4

: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의 삶


‘위안부’여성들은 엄격한 감시와 통제 아래 하루에 많게는 몇 십 명에 이르는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고 병사들로부터 폭력, 고문, 자살 강요 등의 학대를 받았다. 종전시 ‘위안소’에 있던 여성들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또 한번 가혹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살을 강요당하고 집단 죽임을 당하거나 ‘위안소’에 그대로 버려졌다.

운동사관 1

: History를 Herstory로 바꾼 여성들의 목소리


침묵을 깨트리다.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역사의 뒤안길에서 그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강요당한 침묵을 깨고 시작된 ‘그녀들의 외침’은 그 진실을 밝히는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가 되어 흘러나갔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전시물과 영상을 통해 법정투쟁, 국제활동 등의 기록을 살펴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수요시위의 현장을 경험한다.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세워진 평화비를 만난다.

운동사관 2

: 책임자를 처벌하라


정부의 관여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일본정부는 전면적인 책임 인정과 법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채 미봉책만을 취했으므로 이헤 대응하는 다각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운동사관 3

: 연대로 희망을 만들다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 운동은 생존자 지원활동과 함께 과거사 청산 및 평화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갔고,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연대행동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운동사관 4

: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된 수요시위는 일본정부에게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결의를 밝히며 시작되었다. 정대협을 비롯한 여성계 참가자 10여 명의 목소리로 시작했던 시위는 2011년 12월 14일, 1,000차를 맞이하기까지 수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여성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열린 공간으로 변화해왔다. 일본군’위안부’생존자들이 가장 앞줄을 지켜 왔으며, 정대협이 주최하고 정대협의 회원단체, 여성단체,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일반 시민들이 주관하거나 참여하여 진행되고 있다. 피해자와 시민들이 연대하며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공간, 여성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장으로 자리잡아 온 수요시위는 국경과 이념, 세대와 성별을 넘어 정의실현을 추구하는 세계연대의 소중한 열매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12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지금도 수요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생애관 

: 삶을보다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사진, 신문기사, 영상증언 등 피해자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보다 상세히 살펴본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서른 분의 할머니들을 손 끝 하나로 만나볼 수 있다.


할머니들의 손때 묻은 유품들


연행 시기와 지역 등 피해 기록이 소개된 패널과 함께 피해자들의 손때 묻은 물건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기부자의 벽

:박물관 건립의 주춧돌이 된 사람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건립되기까지 주춧돌이 되어 준 후원자들의 명단이 2층 중앙 벽면에 새겨져 있다. 기부자의 벽에는 약 7,5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중 국내 개인은 5,600여 명, 국내 단체 및 기관 400여 곳에 이른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1,500여 개인 및 단체가 박물관 건립에 힘써 주었다. 특히 이 중 일본인과 일본단체가 무려 1,400여 건을 차지하고 있다.

추모관

:검은 벽돌 속 할머니


고인이 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얼굴과 사망날짜가 벽돌 면을 채우고 있다. 또한 이름과 얼굴을 남기지 못한 채 희생된 피해자들은 검은 벽돌로 채워져 있어서 함께 추모할 수 있다. 누구나 직접 헌화할 수 있는 공간이고, 다음에 마련될 꽃을 위해 헌화 후원금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