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영상 해제 및 콘텐츠화 연구



  끝없는 귀향길


  2000년 12월 8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첫째 날, 양현아 검사는 1945년 전쟁 종결 후 남겨진 일본군‘위안부’들이 사망하거나 강제 해외 잔류로 디아스포라가 되거나 혼자서 힘들게 귀국한 경우가 있음을 설명하며 최갑순을 언급했다. 최갑순의 증언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녀의 4년여에 걸친 귀향길이다. 최갑순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그 과정에서 만난 여러 사람과 굶주림, 그리고 그 와중에 먹었던 것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두만강을 손잡고 같이 건넌 여자와 비지를 내어주고 두부 장사를 시켜준 두부집 사람, 개성까지 같이 걸어 온 경상도 여자, 산수갑산에 시누가 산다는 여자 등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며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미치게 굶는” 와중에 국에 말아준 식은밥을 얻어먹으며, 떨어진 연탄을 주워서 버린 생선을 굽고 콩깻묵을 방앗간에서 빻아서 쪄서 먹고, 비지를 얻어먹고, 낟알을 빨아먹으며, 사과, 야생 열매, 감자, 진 뺀 아편씨 등을 먹으며 이동했다. “만주에서 혼자서 발로 걸어 귀국하는데 4년이 걸렸다”는 말로 요약된 그 행간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전후의 혼란함과 그 속에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한다.


일본 도쿄 구단회관에서 열린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첫째 날(12월 8일) 양현아 검사가 전후 여성들의 귀국에 대해 발언하는 대목 43_001-4 (07:40-09:18)
일본 도쿄 구단회관에서 열린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첫째 날(12월 8일) 양현아 검사가 전후 여성들의 귀국에 대해 발언하는 대목 43_001-4 (07:40-09:18)
일본군‘위안부’ 생활로 인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어려움을 보고하는 내용으로 2000년 여성국제법정에서 상영된 영상 속 최갑순의 모습 P4-0146_306 (02:20/02:47)
일본군‘위안부’ 생활로 인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어려움을 보고하는 내용으로 2000년 여성국제법정에서 상영된 영상 속 최갑순의 모습 P4-0146_306 (02:20/02:47)


  그리고 최갑순이 겪어야 했던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헤아려보게 한다. 최갑순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평안하지 못했다. 자려고 누우면 “눈물만 철철 나오면 나 혼자서 울다가 살짝 한숨 자면은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잘 수가 없고, 살풋 든 꿈에서는 아직도 귀향길 위에 있다.


“옛날에 살아왔던 것이 아무리 생각을 안하려고 해도 생각이 나고. 

죽으려고 한 고비를 하나도 안 잊어버리고 졸졸졸 따라서 앞에 딱 서고. 

내가 겨울 돌아오면 만주서 나올 때에, 겨울 돌아올 때에, 나락 훑어서 먹고, 

나락 속에 짚다발 속에서 자고 나온 것이 그냥 앞에가 쭉 서면, 꿈에라도 나락을 씹어 먹어. 

그렇게 꿈을 꿔. 꿈에라도 나락을 그렇게 씹어 베어. 

그 생각을 하고 잠을 깨가지고 보면은 내가 죽어서 혼이 이러냐, 죽어서 다 사니께 그러냐.” 

- (T13-8 30:15-31:00)

 

  고향으로 돌아온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또 다시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최갑순은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한다. 유일하게 자신을 아껴주었던 할머니에게 “나 안 죽고 살아왔어 그 소리나 하고 죽어야지” 생각하며, “먹고 자는 거 안 사먹고 모아서 모아서”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힘들게 힘들게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리워하는 고향은 과연 최갑순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일본군‘위안부’로 떠나야 했던 이들에게 안식을 주는 고향은 존재했을까. 어쩌면 최갑순의 귀향길은 끝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8)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 “기록물로 보는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관련 기록물1.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녹취록 요약(2000년 12월 8일) https://kyeol.kr/ko/node/243

9) <증언영상 T13-6>, 13:50 ~ 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