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영상 해제 및 콘텐츠화 연구



“한 번을 마음 좋게 살지 못한 세상이라서”

 

 

“우리 어메한테(서) 살아나온 일 생각하고, 그 일본 사람한테 당한 거, 

만주서 나올 쩍에 두부장사하고, 기앙 뭐 사다 팔고, 돈 만들러 두만강서 빠져 죽을 뻔한 거, 

쭈욱 생각이 나서 낼 아침까지 잠이 하나도 안 와요.”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풀빛. 2001. 145.

 

 

  몸에 새겨진 역사


  최갑순의 증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배고픔’이다. 어렸을 적에도, 아버지 대신 순사에게 넘겨져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위안소’에서 지낸 십여 년의 시간 속에서도, 소련군에 의해 여성들이 겁탈당하고 중국인이 조선인을 곡괭이로 찔러 죽이는 상황에 밀려 고향을 향해 떠난 여정에서도, 많이 굶었고 배가 고팠다. 그리고 ‘배고픔’이라는 감각은 폭력과 긴밀히 연결된 것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친구 집에서 밥을 훔쳐 먹어서, 나락을 지고 오다 개울에 흘려서 어머니에게 맞아 죽을 뻔하고, 쌀밥 준다는 소리에 따라가 ‘위안부’가 되었고, 밥 먹으러 갔다가 ‘손님’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요릿집’ 주인에게 맞아서 얼굴이 퉁퉁 부어 다음 날까지도 밥을 못 먹고, 추운 겨울 걸어서 서울로 향하는 길에서 나락을 씹어 먹으며 이가 애렸다. 힘들게 돌아온 고향에서도 사는 것은 쉽지 않았고, 쉬지 않고 일했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최갑순은 일본군‘위안부’로서만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빈곤함과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6.25 전쟁과 민간인 학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자신의 말대로 “내 이름자라도 쓰믄은 나 살아나온 일을 다 쓰믄은 책이 내 키보담도 더 클”¹ 것이다. 최갑순은 글은 모르지만 엄청난 기억력으로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한다. 어떤 순간에도 기지를 발휘하여 살아낸 스스로를 “억척스럽다”고 하지만, 그 많은 일들을 겪으며 온전히 살아내게 한 힘은 웃는 얼굴에 가득한 천진함과 다정함,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그 험한 세상을 살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최갑순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들을 반겼다고 한다.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함께 귀를 기울여보자.




1) <증언영상 T13-6>, 12:4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