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영상 해제 및 콘텐츠화 연구



  생애 요약

  1927년 부여에서 삼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자 1943년 13세 무렵 때 수양딸로 보내졌다. 수양부모 덕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나, ‘처녀 공출’이 배당되자 수양부모의 친딸을 대신하여 자처하였다. 1941년에 군수공장에 간다는 말을 믿고 나섰으나, 길림의 군부대로 동원되어 ‘위안부’가 되었다. 해방까지 길림의 군부대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였으며, 해방 직후 귀향 인파에 섞여 1945년 12월 청량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6·25 전쟁이 날 때까지 국밥집, 방직 공장 등에서 일했으며, 전쟁 후에도 다시 청량리로 돌아와 식당을 하였다. 1991년 12월 정대협에 피해 사실을 신고한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UN 인권소위원회, 아시아 연대회의 등에서 증언하였으며, 미국 워싱턴 정신대문제 대책위원회가 발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0년에는 중국, 대만, 한국, 필리핀 출신의 ‘위안부’ 생존자와 함께 미국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집단 소송 제기하였으며, 이 소송은 ‘황금주 vs. 재팬’으로 불린다.


생애 시간표

1927년
  • 부여 출생(3남매 중 장녀)
  • (행정문서에는 1927년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본인은 1922년으로 증언함)
1934년
  • 아버지의 약값을 마련하느라 함흥 부자의 양녀가 됨
  • 양부(함흥 부자) 첩의 집에서 집안일을 도움
1936년
  • 첩의 구박이 심해 양부 본처의 집으로 옮김
  • 양모의 호의로 함성여자강습소(야학) 다님
1941년
  • 마을의 일본인 반장 부인이 군수공장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으며, 한 집에 적어도 한 명은 가야한다고 협박
  • 양부모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자진해서 나섬(1941년 음력 2월)
1941년
  • 길림에 있는 군부대로 동원됨, 고야라 불리는 막사에 짐을 풂
  • 이곳에서 처음엔 장교만 상대하다가 보름쯤 후에 짐은 그대로 둔 채 위안소로 이동. 낮에는 위안소에서 일하고 밤이면 막사로 돌아 옴
-
  • 다른 부대로 이동, 장소는 확실히 모르나 육군은 아닌 것 같음
  • 길림보다 더 열악하여 길림으로 후퇴하는 군인들 속에 끼어 이전 부대로 돌아 옴
1945년
  • 길림의 부대에서 해방을 맞음, 1945년 12월 청량리 도착
  • 청량리 국밥집에서 3년간 일함, 1948년(27세) 청량리 태창방직공장 취직
1950년
  • 방직공장장에서 일하다가 6.25를 맞음
-
  • 전쟁 이후 청량리로 다시 돌아와 이웃의 도움으로 자궁 수술을 받음
···
1991년
  • 12월, 정대협에 피해자 신고
1992년
  • 3월, 일본 도쿄 심포지엄에서 증언
  • 8월, UN 인권소위원회 최초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 증언
  • 11월, 버지니아주 워싱턴 한인교회에서 증언
  •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 보상에 관한 국제 공청회> 참여
1993년
  • 1월, 뉴욕한인회 미국 언론 상대로 피해 사실 증언
  • 10월, 2차 아시아연대회의 참여
  • 미국 하와이대학 인권 심포지엄에서 증언
1994년
  • 2월,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입안 운영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도쿄지방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하였으나 접수를 거부당함 (황금주 포함 27인)
1995년
  • 3월, 3차 아시아연대회의 참여
1996년
  • 4월, 4차 아시아연대회의 참여
1998년
  • 4월, 5차 이사이연대회의 참여
2000년
  • 9월, 미국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집단 소송 제기 (Hwang vs Japan, 황금주 포함 15명)
  • 9월, 미국 워싱턴 정대위 ‘존엄과 명예의 여성을 위한 2000년 인권상’ 수상 (황금주 포함 10명)
  • 12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참여
2001년
  • 오사카 조선학교 방문 수업
  • 4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도쿄 문부과학성 항의 방문
2003년
  • 6월, 미 워싱턴 법원 Hwang vs Japan 건에 대해 외국주권면제법을 근거로 기각한 하급 법원의 결정 확정
  • 7월, 대만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 방문하여 황금주와 만남
  • 11월, Hwang vs Japan 건에 대해 원고들은 미국 연방대법원에 소장을 제출.
2004년
  • 전쟁과여싱인권박물관 건립에 500만원 기부
  • 5월, 일본의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제2차 국제연대협의회 참여
  • 10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에 1,500만원 기부
  • 12월, 국가인권위원회 ‘소수인권보호를 위한 공적상’ 수상
  • 12월, 유엔 인권위원회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에게 진정서 제출 (황금주 등 4명)
  • 12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에 8,000만원 기부
2005년
  • 1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에 1,300만원 기부
  • 3월,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학에서 증언
  • 8월, 일본 정부에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며 14개국에서 받은 55만 명의 서명부 일본 정부에 제출
  • Hwang vs Japan 소송 건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항소법원 판결 중 외국주권면제법의 소급적용을 부정한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연방항소법원으로 환송
2006년
  • 나눔의 집에서 생활 시작
  • 2월, 미국 연방항소법원, Hwang vs Japan 소송 건을 법원이 다룰 수 없는 정치적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소를 각하
2007년
  • 부산 요양원 거주
2013년
  • 1월 3일 별세, 천안 ‘망향의 동산’ 안장

※ 생애 시간표는 행정자료 및 증언 영상을 우선적으로 참조하고, 누락된 부분은 기존 증언집 및 기 타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