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이가 시작하고, 듣는 이가 이어가는‘증언’
1999년 7월,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준비하던 연구팀은 증언 채록을 위해 이순덕을 찾아가지만 인터뷰에 실패하고 만다. 당시는 이미 관부재판의 항소가 진행되고 있던 시기로, 오랫동안 재판에 참여하고 있던 이순덕에게 또 다시 증언을 되풀이하는 일은 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이순덕은 면접자들에게 “이런 거 해 갖고 가도 될 수 있으면 하고 못 허면 애초에 안 해야 해”⁵라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면접자들은 증언을 남겨야 억울한 피해가 역사에 남을 수 있고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을 촉구할 수 있다며 이순덕을 설득하려 하지만, 이미 십 년 가까이 법적 투쟁을 하고 있던 이순덕에겐 그러한 피상적인 말보다 혼신의 힘으로 쏟아 냈던 한 번 한 번의 증언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경청해 주는 태도가 더욱 필요했을 것이다.
다행히 관부재판의 증언은 진술 요약, 방청기 등 여러 형태로 지원 단체의 소식지에 남아있다. 언급했던 마쓰오카 스미코(松岡澄子)는 ‘진술서’에는 남아 있지 않은 1994년 9월 5일 재판의 장면을 전한다. 본인심문의 원고였던 이순덕은 자신의 설명을 바탕으로 변호사가 그린 위안소 그림을 보고 몹시 흥분하였다고 한다. 그림이 당시의 기억을 환기한 탓인지 이순덕은 그때 일본도에 베인 등이 아프다고 울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재판은 잠시 휴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순덕이 얼음으로 머리를 식히고, 방청객 중에 있던 의사가 맥을 짚어 보고, 김문숙이 시중을 들고, 이금주가 기도를 하고, 변호사가 걱정스레 지켜보는 상황이 두 번이나 반복되었다고 한다. 마쓰오카 스미코는 이순덕이 가까스로 심문을 마치고 변호사 뒤의 자기 자리로 돌아와 펑펑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눈물에는 원망, 비참함, 분노, 그리고 본인 심문의 긴장감에서 해방된 안도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⁶ 일본 정부가 사죄를 거부한다면 높은 사람 앞에서 자결을 하겠다던 서슬 퍼런 이순덕이 변호사 뒤 원고석에서 설움에 북받쳐 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재판정을 오가며 수차례 증언했음에도 여러 증언집에 누락되어 있는 ‘이순덕’이라는 이름의 부재 앞에 우리는 부끄러워진다. 그 빈자리는 피해자가 증언을 위해 감내한 고통과 슬픔만큼 듣는 이 또한 정성과 주의를 기울였는지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관부재판의 이순덕 증언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0년 5월 19일 히로시마 고등법원에서 제6차 구두변론이 열린 날. 이순덕이 준비된 진술서를 읽고, 이금주가 이를 통역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순덕은 이금주의 통역을 가로막듯 일본어로 “이 가슴의 상처를 보아라”라고 소리치며 옷자락을 걷어 올렸다. 이에 일본측 대리인과 재판부가 눈을 피하듯 고개를 숙였고, 이순덕은 그러한 태도에 더욱 화가 났는지 왜 보지 않느냐고 소리쳤다고 한다.⁷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기고자는 그날의 증언에 대해 인상 깊은 해석을 남겼다. 기고자는 이순덕이 재판을 위해 준비된 진술을 하고, 이를 이금주가 정중한 일본어로 통역하는 것을 보면서, 이순덕의 증언이 멀끔한 일본어가 되어갈수록 “왠지 할머니의 마음에서는 멀어지는 듯한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다 이순덕이 판사를 향해 일본어로 소리치는 것을 듣자, 기고자는 이순덕의 증언에서 “늘 들어왔던, 재일 1세 특유의 한국어 악센트의 일본어”이자,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목소리”를 느꼈다.⁸ 활자 텍스트로 전해지는 방청기라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목소리”는 각자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이름 없는 방청객의 듣고자 하는 진심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의 우리는 저마다 이순덕의 ‘생생한 목소리’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증언은 피해자의 용기로 시작되지만, 그것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메시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듣고자 하는 이들이 필요하다. 많이 늦었지만, 아직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목소리는 여전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 상처를 보아라”
5) 최기자·김연희 면접 녹취록(P2-1668_녹취록), 1999.7.8., p. 12.
6) 松岡澄子, 「李順德さんつらい過去を語る 初の本人尋問 弟六回口頭弁論」, 『關釜裁判ニュース』 第 7号, 1994.10.1.
7) 日高明子, 「証人採用されるー第六回口頭弁論報告」, 『關釜裁判ニュース』 第 32号, 2000.7.9., pp. 4~5.
8) 「關釜裁判傍聽記」, 『關釜裁判ニュース』 第 32号, 2000.7.9., p.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