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달연의 삶을 담은 그림책 『꽃할머니』 일본어판을 둘러싸고
『꽃할머니』 는 권윤덕 그림책 작가가 심달연의 생애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한중일 3개 국어로 그림책 12권을 공동 출판하기로 했던 ‘한중일 평화그림책’ 시리즈 기획의 일환으로 제작되었고, 한국의 사계절출판사, 중국의 이린(譯林)출판사, 일본의 도신샤(童心社)가 출판을 맡으며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초 도신샤는 일본군‘위안부’를 다룬 그림책을 출판할 경우 우익들의 표적이 될 것을 두려워했고, 실제로 우익들의 협박 속에서 2013년, 『꽃할머니』의 일본어판 출간을 포기했다.
왼쪽부터 차례로 한국어판 『꽃할머니』(사계절출판사, 2010년), 중국어판 『花奶奶』(译林出版社, 2015년), 일본어판 『花ばぁば』(ころから, 2018년)
2006년에 들어선 제1기 아베 정권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고, 특히 조선인 ‘위안부’의 강제 연행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일본 사회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꽃할머니』 일본어판 출간에서 쟁점이 된 것은 무엇보다 이 그림책이 ‘정확하지 않은’ 심달연의 증언을 모델로 했다는 점이었다. 위안소로 끌려간 경위나 이동경로, 위안부 생활을 했던 지역명, 귀환 후 한국에서의 삶 등을 심달연은 제대로 기억해 내서 일관성 있게 말하지 못했다. ‘불완전한’ 증언에 대한 우려와 함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 전시성폭력을 다루는 것에 대한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우려 또한 이어졌다. 이후, 다른 출판사가 출판 의지를 보였고, 필요한 경비 일부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민 202명이 보태어 결국 2018년에 일본어판 『꽃할머니』가 출간되었다.
심달연이 위안소에서의 생활과 귀국 이후의 삶을 일관성 있게 기억하지 못하거나,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거나, 기억의 내용이 명료하지 않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증언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거나 증언 사실의 시시비비를 가리며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억의 파편화와 시간의 공백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심달연의 증언은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 뿐만 아니라, 패전 직후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들의 ‘방치’를 비롯하여 전후의 한국사회에서 몸과 마음에 대한 어떠한 국가적 돌봄도 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겪어야 했던 다른 층위의 위안부 ‘피해’로서 말해져야 한다.
“잘라고 누우면 신이 들렸는지 뭘 보는 것처럼 떠올랐다”⁷는 심달연의 증언 속에서 시시각각 피해자들의 일상에 출몰하며 잠 못 이루는 밤으로 되돌아오는 끔찍한 기억의 조각들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은 전쟁이 끝나도 끝나지 않은 또 다른 전장을 살아가게 된다. 이를 알아차리고 관계 맺고 듣고 기록하는 일은 겪지 않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이 받아 안아야 할 ‘전후 책임’이기도 하다.
7) A00006110, 2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