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금이 엉터리라는 것을 밝히고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겠습니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기금’(이하 국민기금)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1995년 설립된 민간기금이다. 전후 50주년이 되던 해인 1995년 설립되어 2007년 해산하였으며, 흔히 ‘국민기금’으로 불린다. 일본 정부는 민간 모금 형식으로 모은 기금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전달하고, 의료와 복지 사업 등을 지원하였지만,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만 인정하고, 보상 책임을 민간에 떠넘긴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국 피해자 중 60명이 이 기금을 수령하였고, 다른 많은 피해자들은 일본이 국가 차원의 법적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수령을 거부하였다.
2005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7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는 국민기금 관련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국민기금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른 세 개의 필리핀 단체가 처음으로 같이 회의에 참석했고, 이들을 포함한 모든 참가자는 수령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기금이 피해 여성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심달연은 증언 패널로 참석하여 국민기금과 관련해서 자신이 겪었던 부당함을 호소했다.
1998년,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심달연에게 ‘브로커’로 추정되는 남성이 찾아와 주민등록등본과 도장 등을 챙겨간 뒤 심달연은 동료들이 기피하는 국민기금을 수령했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돈을 받은 적이 없는 심달연은 변호사의 도움으로 국민기금 측에 사실 확인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고, 결국 2005년 일본에 가서 모든 서류가 접수되어 통장사본의 계좌로 돈이 지급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민기금 측이 제대로 본인 확인도 하지 않고 수령자 수를 불리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심달연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일본이 “한국, 대만, 필리핀의 피해자 285명에게 돈을 지급했다”며 배상거부의 명분으로 삼는 이 기금이 결국 브로커를 낳은 문제투성이의 면피성 기금일 뿐이라는 사실을 함께 폭로했다.⁵
심달련(沈達蓮)
“중국에 연행되어서”
나는 「국민기금」을 받았는가? 그 진상에 대해 기금 측에 물어보고 싶다.
「국민기금」의 지급이 시작된 무렵, 심달련 할머니는 친하게 지내던 피해자 동료 중 한 분인 S 할머니한테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큰 돈이 들어온다는 말이 있는데 서울에 살짝 나와 보지 않으련”하는 권유의 말이었지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심달련 할머니는 혼자서 갈 수 없기 때문에 거절했더니, “그러면 내가 도와줄 사람을 구해줄게”라고 얘기가 되어 낯익은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한국정부가 심달련 할머니의 피해자 인정증을 빌리고 싶어한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불안함을 느껴 거절했다. 그러자 “복사본이라도 안 될까요”라는 그의 말에 근처 편의점에 같이 가서 복사를 했다.
그 후, 심달련 할머니는 「국민기금」을 받지 않는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지만, 그 때문인지 S 할머니한테 “당신이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하는 바람에 큰 돈이 들어올지도 몰랐던 일이 중지되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났지만, 3년 전 한국에서 지급받은 피해자의 인원수가 공표되지 않은 채로 국민기금의 사업이 종료했을 때, 심달련 할머니는 그때 자신의 명의를 이용해서 국민기금의 돈이 거짓 지급된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과연 자신의 이름으로 국민기금이 지급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다고 하며, 제대로 된 절차를 밟고 문의하였지만, 국민기금 측은 일체 회답을 피해왔다. 이번에도 심달련 할머니는 기금의 사무소를 방문해서 사실을 명확히 밝히는 것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같은 해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심달연은 공식 증언자로 참여하여 국민기금의 문제점과 법적배상 촉구, 일본군‘위안부’와 관련된 만행을 폭로하는 증언을 이어나갔다. 심달연과 동행한 신혜수 정대협 당시 상임대표는 4월 5-6일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여성문제 비정부기구 발언 시간과 7일 국제NGO포럼에 참석해 일본군‘위안부’ 피해 현실과 일본의 행태를 고발하고 관련자들의 처벌과 배상을 주장했다.⁶ 심달연은 4월 7일 국제NGO포럼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기금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의 만행과 국민기금의 비인권성을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같은 날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관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패널 토의 "Violence against Women in War: Justice, Redress and Empowerment for Women”에는 야킨(Yakin Ertürk) 여성폭력 특별보고관, 일본과 버마 등 시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심달연이 패널리스트로 참석하여 일본의 아시아 여성기금의 기만적 행위에 대해 고발하고, 신혜수 정대협 대표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주장하고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20만 명의 서명탄원서를 4월 6일 인권고등판무관에게 전달하였다. 「2005년 여성부 제61차 UN 인권위원회 참가 보고서」 등 유엔의 공식 기록이 남아있지만, 심달연의 증언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대부분 유엔의 공식 기록물의 경우,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회의장이 아닌 기자회견이나 비공식회의를 통해 발신되기 때문이다.
5) 심달연·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일본‘국민기금’의 비도덕성 폭로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문」, 2005.2.16.
6) “군대위안부 생존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가 참석한 가운데, 심 할머니가 겪은 경험을 소개하고 일본정부가 아시아 기금을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다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심 할머니가 사실과 다르게 아시아여성기금의 수혜자인 것으로 되어있으며 아시아여성기금이 수혜자 명단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데에서 동 기금이 기만적이라는 점을 잘 알 수 있음. 일본정부가 책임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며 과거의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일본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자격이 없다.”(「2005년 여성부 제61차 UN 인권위원회 참가 보고서」, 15쪽,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아카이브814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