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영상 해제 및 콘텐츠화 연구
돌아왔지만 돌아올 수 없었던, 귀환 이후 기억의 공백
패전한 일본군은 심달연을 위안소에 그대로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귀국선을 타게 된 정황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들만 둘인 한국인 부부가 귀국선을 타면서 우연히 마주친 심달연을 데리고 들어왔다. 심달연의 심신이 회복되면 양녀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심달연은 돌아와서도 위안소 생활의 충격으로 실어증과 정신착란 증세가 있었고, 거식과 폭식을 반복했으며 사람들을 보면 기겁하고 도망치며 구석으로 숨었고, 누구와도 같이 밥을 먹지 않았다. 하루 종일 구석에만 숨어 지내다가 밥을 놓고 나가면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먹었다. 밤이고 낮이고 악몽에 시달렸다.
“잘라고 누우면 신이 들렸는지 뭘 보는 것처럼 떠올랐다”
- 2007년 10월 6일 LA세계증언대회에서(A00006110 , 29:53)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심달연은 어느 날 저녁 숲에 버려졌고, 지나가던 스님이 거두어 그때부터 절에서 지내게 되었다. 절에서 지낸 20년간의 기억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라는 사람이 찾으러 왔다. 심달연은 오랜 시간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살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이름을 불러준 동생에게 짧은 대답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달연아!”
“응?”
“아이고 니 달연이 맞구나!”
- 2007년 10월 6일 LA세계증언대회에서(A00006110 , 26:12~29:29)
그때부터 동생의 집에 살게 되었고, 살뜰한 보살핌 덕분에 조금씩 몸과 마음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 세월조차도 어떻게 지냈는지 세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문소리만 나도 방 한 구석에 숨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집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았던 나날들이었다는 것만 ‘들어서’ 알고 있다. 어쩌다 밖에 나가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동생이 없어져뿟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한 집에 살면서도 동생이 죽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달연은 동생이 죽고 나서 남겨진 조카들을 자식같이 여기며 함께 살았다.³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할머니, 어데 갔다왔능교?”
“‘덴노 헤카이’ 갔다왔다”
심달연은 ‘덴노 헤카이’(천황 폐하)기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입에서 무심결에 튀어나왔다. “맞다 맞다 텔레비전에 나오던데” “테레비 암만 나와도 글씨를 알아야 텔레비전을 알재!” 그러고 나서 대구 서구청에서 또 사람들이 찾아와서 물었다. “‘덴노 헤카이’ 갔다 왔능교?” “몰라 나는 몰라!”⁴
일본에서 기자들도 찾아왔다. 쑥 캐다가 붙들려 간 곳으로 가보자 했다. 동사무소에 가서 등본을 떼고 아직 고향 마을에 살아있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언니와 자기가 사라지고 난 이후 부모 형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전해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