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요약
강순애는 1927년 일본 시가현 히코네에서 태어났다. 마산에 살던 아버지가 일본인에 고용되어 임신한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강순애를 낳았다. 아버지는 측량사, 조선인 갱부의 감독으로 일하고, 어머니는 공장이나 갱부들 식당에서 일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 강순애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유년기를 보냈고, 열세 살 무렵 조선에 들어와 마산에서 살게 되었다. 1941년 즈음 일본군이 여자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있어 할아버지의 화장막에 숨어 지냈으나, 동생이 배급을 타 달라는 바람에 헌병의 눈에 띄었다. 배급 받은 지 며칠 만에 집으로 찾아온 군인과 헌병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시모노세키에서 히로시마로 이송되었다. 히로시마에서는 군인의 감시 하에 밀감밭에서 일했다. 1942년 1월 경 히로시마에서 남양군도로 가는 수송선 '미토마루(水戸丸)'를 탔으나, 출항한 지 이틀 만에 미군잠수정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어 다시 ‘오사카마루(大阪丸)’로 갈아타고 한 달 사흘 만에 남양군도 파라오에 도착하였다. 이때부터 미군 포로가 될 때까지 ‘위안부’로 생활하였다. 1946년 미군 배를 타고 부산으로 귀환하여 마산으로 돌아갔다. 1950년대 부산, 마산의 공장에서 생계를 잇다가, 1960년대에는 전쟁터에서 만났던 조선인 병사들의 가족을 찾기 위해 속초, 포항을 헤매기도 했다. 1976년 박원웅과 혼인하였다. 1992년 3월 남편이 사망하였고, 그해 10월 ‘위안부’ 피해 신고를 하였다. 이후 <일본의 전후 보상에 관한 국제 공청회>(1992), <일본 교과서 관련 아시아연대 긴급회의>(2001) 등에 참여하여 증언자로 나서기도 했다. 2005년 4월 78세의 일기로 영면하였다.
생애 시간표
| 1927년 |
|
| 1936년 |
|
| 1941년 |
|
| 1942년 |
|
| 1945년 |
|
| 1946년 |
|
| 1962년 |
|
| 1967년 |
|
| 1976년 |
|
| 1992년 |
|
| 1994년 |
|
| 1996년 |
|
| 2001년 |
|
| 2005년 |
|
* 생애 시간표는 행정자료 및 증언 영상을 우선적으로 참조하고, 누락된 부분은 기존 증언집 및 기타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함